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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단상

10.19 지역 필수의료 혁신전략이 지방부활의 마중물이 되어야

by 하얀자작_김준식 2023. 10. 22.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제외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하였다. 이 가운데 비수도권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증 환자의 최종치료 서비스를 지역에서 완결하고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하여 국립대병원 등을 필수의료 중추로 집중 육성하고 이곳에 지역 병의원을 네트워크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사 수도 늘리고 지역ᆞ필수의료 인력의 유입을 촉진하겠다고 한다.

국립대병원의 역할과 의료서비스 향상만으로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이미 지역ᆞ필수의료가 붕괴되는 위기 속에서 전국의 모든 환자가 서울에 있는 Big-5 병원으로만 몰려들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연봉 3∼4억원을 내걸어도 비수도권 지방도시에서 의사를 구하지 못한다. 지방의 병원들이 응급실을 폐쇄하거나 아예 병원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한다.

왜 훌륭한 의사들은 서울을 떠나려 하지 않을까? 단순히 돈(보수)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다. 가족 문제, 즉 자녀 교육환경, 배우자의 일터 문제로 떨어져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생활 인프라도 비수도권 지역 근무를 기피하게 한다. 지방도시, 특히 소도시는 쇼핑, 외식, 공연 등 여가나 문화생활 면에서 수도권과 격차가 매우 크다.

과거 지방육성정책은 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까?

정부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지역의료 인프라를 개선하여 지역 정주여건을 향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수한 의료인력을 비수도권에 끌어들여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 우수한 정주여건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대학은 물론 우수한 유초중등교육 체계가 먼저 구비되어 있는 곳이어야 우수한 의료인력이 유입된다. 그리고 서울에 가지 않더라도 필수적인 여가∙문화 생활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이처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상승(相乘)관계는 의료만이 아니라 산업, 문화, 위락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역 사회 및 경제는 기본적으로 그 지역 사람들이 행하는 창의적 활동, 생산 활동, 소득 창출, 소비 활동이 순환하면서 부흥하기도 하고 침체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1970∼2000년에 산업화를 거치며 한국은 이러한 순환 사이클이 계속 확대되어온 선순환(virtuous cycle)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인구 정체ᆞ감소와 사회, 경제, 문화의 서울ᆞ수도권 집중에 따라 대부분의 지방 도시나 농어촌은 여기에서 소외되어 반대로 악순환(vicious cycle)에 빠지게 된 것이다.
나는 지역소멸을 막는 것이 의료서비스를 향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길게 지속될 수도 없다고 본다. 필수의료만이 아니라 그 지역의 사회, 경제, 문화 분야에 걸친 고급화과 함께 구현되는 선순환이 지역소멸을 막고 바람직한 지역사회를 구현하는 길이다.
지역사회의 생태계 회복 및 이에 따른 수도권 집중 해소는, 사회ᆞ경제의 여러 부문이 함께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매력 있는 도시를 만들고 그 곳으로 우수한 사람들과 기업, 상공인, 교육∙문화자원들을 끌어들여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기업도시, 혁신도시 조성이 지방소멸 해소에 제대로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도 이러한 종합적인 접근이 결여된 것 때문이다. 심지어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의 인구 흡인력도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방소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살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가 필요

앞으로 지역 발전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창의력이 발휘되는 한편 이들이 좋은 직장에서 생산활동에 종사하여 더 높은 소득을 올려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멋진 소비와 문화생활을 영위할 기회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생활 여건이 마련되어야 젊은 인구가 지방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만만하지 않다. 지역문화(local culture)에 뿌리를 두고 창조, 생산 그리고 소비가 상호 작용하는 메커니즘이 마련되어야 지역 사회경제의 선순환이 가능할 텐데, 이것은 몇 년간의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필수의료 서비스에서 시작하는 지역 생태계 복원

필수의료 서비스는 지역의 사회경제적 생태계를 살리고 확장시키는 구성 요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에 담긴 광역시도별 국립대병원 등 거점병원 육성 정책도 제대로 진행되어 실패하지 않게 하려면 그 지역의 교육, 생산, 여가, 문화 등 분야의 발전도 함께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다른 근무여건이나 생활기반이 불충분한 상황에서는 우수한 의료인력을 지방으로 내려오게 하기 어렵고, 이 곳에서 양성된 의료자원이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흐름을 막기 힘들 것이다.
또한 과거 전략처럼 자원ᆞ예산을 분산시켜 자원 나눠먹기식 전략은 곤란하다. 너무 많은 곳에 자원을 분산하거나, 단지 필수의료 확충이라는 단편적인 목적에 매몰되면 지방소멸을 막을 지역 활성화에 성공하기 어렵다. 권역별로 제대로 된 거점도시 형성을 유도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영남권, 호남권에 하나씩 멋진 도시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송도나 제주교육도시 수준의 국제 초∙중등 교육기관 유치, 서울대를 능가하는 글로벌 대학교를 유치하여 누구나 자녀 교육을 위해 옮겨 살고 싶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워라밸 근무∙휴양 환경, 국립대병원은 물론 선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영리병원의 유치**를 통해 고소득자가 매력을 느낄만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토가 다핵화 될 것이며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1단계 다핵화 전략이 성공한 후 그 아래에 네트워크 도시를 연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선도적 비수도권 거점도시가 정착되어 해당지역 내 인구를 묶어 둠은 물론 수도권 인구를 끌어내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렇게 성공한 경험을 다른 권역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에 “국립대병원 등 권역 책임의료기관에 필수의료 자원관리 기능을 부여하고 교수 및 전문의 정원을 확대**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비수도권에 있는 지원 대상 국립대병원 수가 12개(분원 포함)나 되어 한정된 자원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다른 분야이지만 공공기관의 분산, 민간기업의 배치가 제대로 지방소멸을 막지 못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범정부적인 또는 범국가적인 전략이 제대로 실행되고 결실을 맺어, 한국의 남쪽 지방에도 서울을 능가하는 일류도시가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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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 필수의료 혁신전략, 2023.10.19.

** 그동안 보편적 의료복지만 강조하다가 결국 전국의 모든 환자를 서울 Big-5병원으로 집중시켰고, 지방의 대형병원은 존재감을 잃고 병의원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거나 의료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