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대통령이 취임 때부터 끝까지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을 강조했지만, 재임기간 동안 그가 이에 걸맞게 모범을 보였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소수에 그친다. 오히려 그를 지지하거나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편애하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국론을 분열시켰다. 그 시절은 계층간 반목, 경제적 격차, 젠더 이슈 등이 깊어지는 시기로 귀결되었다. 이에 실망하여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에 힘입어 새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스스로 내건 캐치프레이즈인 ‘공정과 상식’을 잘 지키고 있나? 부동산 관련 정책에서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하루하루 위기를 막으려 전전긍긍하는 정부
공급 부족에 더해 코로나19 위기 중 유동성 증발로 급등했던 집값이, 2022년 하반기 들어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미분양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고 금융시장에서는 부동산 PF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런 와중에 강원도 지사가 레고랜드 시행사의 회생절차를 신청한다고 발표하여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트리고,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채권안정펀드를 가동하는 등 급하게 나서 시장 위기를 수습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2022년 12월 고분양가 논란이 채 가시지 않은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이 강행되었다. 분양 공고에 수분양자에게 2년 의무거주ᆞ8년 전매금지ᆞ12억원 초과 주택 대출 제한 등을 적용하는 조건이 붙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청약 경쟁률이 기대 이하로 저조했다. 같은 시기에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분양한 다른 단지의 높은 경쟁률과 대조적이었다. 결국 높은 분양가가 문제였다.
낮은(3.7 대 1) 경쟁률이 계약률 저조로 이어지면 부동산 PF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는 이 여파가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부랴부랴 이 아파트를 위해 일부 구만 뺀 서울ᆞ수도권 대부분 지역을 규제 대상에서 해제하였다. 이로써 이 아파트 수분양자(순위내 당첨자와 예비당첨자)들의 청약 조건이 사후적으로 ‘의무거주 없음ᆞ전매금지 1년ᆞ주택대출 제한 15억원 까지 가능’로 바뀌었다. 그 결과 이 아파트의 계약률은 안심할 수준까지 올랐다.
지난해 미국 FED의 급격한 인상 흐름에 따라 한국의 시장 금리도 가파르게 올랐고, 아직까지도 2022년 초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금리가 쉽게 낮아질 것 같지 않자, 정부는 금융기관들에게 여신은 물론 수신 금리의 인상 자제를 유도하고, 최근에 들어 사실상 금리를 낮추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장을 통제하는 정책에서 뒤로 밀린 공정
둔촌재건축 아파트는 누구나 살고 싶은 환경을 갖춘 강동구 소재 대규모 단지이다. 그러나 분양가가 평당 3,829만원으로, 입지가 우월한 주변 송파구의 기존 아파트 시세에 비해서 낮다고 볼 수 없어 부동산 하락기에 매력이 반감되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청약한 사람들은 좋은 아파트를 까다로운 조건을 감수하면서 높은 가격이라도 사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반대로 청약을 포기한 사람들 중에는 의무거주 또는 전매제한에 부담을 느낀 경우가 있다. 또한 84㎥형의 경우 분양가격이 13억원 이상으로, 은행 차입이 막힌 상황에서 입주 때 전세도 놓을 수 없어 분양대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청약을 하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청약 접수 뒤 정부의 갑작스러운 규제 해제로 희비가 엇갈렸다. 악조건을 무릅쓰거나 재정적 여유를 가진 당첨자들에게 혜택을 더 늘여준 것이다. 반면에 어려운 사정으로 청약을 포기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분양공고 전 규제 해제였다면 청약에 참여할 수 있었던 기회를 잃은 꼴이다.
주택 관련 대출 등 서민 대출금리 상승을 억누르는 행정조치도 애매하다. 금융시장에서 최고대출금리를 억누르면 저신용자들이 돈을 빌리기 힘들어진다. 예대금리 차가 줄면 은행들의 리스크 회피성이 높아져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기피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대출금리 상승억제 조치는 기존에 차입금이나 전세금을 이용하여 이미 주택을 매입한 사람에게는 득이 될 것이다. 더구나 갭 투자자들에게 더욱 그렇다. 반면에 이런 금리인하 유도 조치는 시장의 자율조절 기능을 저해함으로써, 집 없고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돈 구하기가 더욱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을 불러온다.
좁은 시야로 단기적 사태 수습에 급급한 행정
금년 1.3 규제지역 해제는 둔촌 재건축아파트의 계약률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시중에서 ‘둔촌 일병 구하기’라 부르는 비아냥이 나올까?
이에 앞서 이러한 무리수를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우선 강동구청이 분양가 심사(22.11. 초)를 엄격하게 하여 분양가를 무리 없는 수준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다. 다음으로 분양가 승인 후 모집공고(22.11.27.) 이전까지 다음 상황을 시뮬레이션 할 시간도 짧지 않았다. 그리고 계약률이 낮아 PF자금 조달이 힘들어질 경우 이를 뒷받침할 채권안정펀드도 준비되어 있었다. 왜 정부는 재건축조합의 고분양가 고집에서 비롯된 사태를 굳이 무리하게 뒤늦은 정책 변경을 통해 막았을까? 사실 그 결과의 책임은 무리한 욕심을 부린 조합원이 져야 했음에도 정부가 대신 막아준 것이 옳은 일인가?
그리고 과거 무리하게 부채를 내거나 갭 투자를 해서 주택을 구매했던 사람들, 벌어서 이자도 제대로 낼 수 없는 한계기업을 도와주기 위해 금리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 옳은 정책일까? 이럴 경우 그 맞은편에 경계선 상에서 고통을 받는 저신용자들이 희생될 것임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정책 수립은 물론 시행에서도 ‘공정과 상식’을
두말할 것도 없이 정부의 정책은 그 이해 관계자들에게 공정성이 최대한 확보되게끔 수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행 시기 또한 적절해야 한다.
이자율 상승을 제한하기에 앞서 먼저 저신용자에 대한 구제 대책이 철저히 마련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레버리지 투자자나 한계기업을 무턱대고 연명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판단도 선행되었어야 했다.
아파트 청약을 포기한 약자들을 빼놓고, 대담하고 여유있는 청약자들에게 획기적인 사후적으로 특혜를 주는 것은 결코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미리 정책을 시행하여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었거나, ‘둔촌 일병 구하기’를 위해서는 다른 상식에 걸맞은 수단을 쓰는 편이 옳았다.
전문가들의 중론에 따르면 국내외 경제 환경이 좋지 않아서 한동안 부동산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절이 지속될 것 같다. 앞으로 정부의 부동산 관련 정책이 부디 ‘공정과 상식’을 지키면서 수립, 시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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